이고르 프리티코
이고르 프리티코
2025년 11월 14일, 법원은 55세의 이고르 프리티코에게 극단주의 단체 활동에 가담한 것으로 인정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신자 자신은 무죄를 주장하며 박해를 "종교적 견해의 거부"의 표현이라고 불렀다.
"제 일의 특성상 저는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고, 사람의 긍정적인 특성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됐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반응이 빠른 대화 상대로 명성을 쌓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평생 건설 및 수리 분야에서 여러 직업을 바꾼 프리티코가 법정에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멋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사람들이 찾도록 돕는 일,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 모든 것, 재판장님, 사회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입니다."라고 덧붙이며, 자신의 생활 방식이 극단주의와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비로비잔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형사 사건이 가장 많은 러시아 도시 중 하나로, 이 뉴스가 보도될 당시 24 건(28명에 대한 범죄 사건)이 있었습니다. 네 명의 신자들 이 형벌 식민지로 보내졌고, 21명 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고르 프리티코에 대한 박해는 2024년 겨울에 시작되었으며, 법 집행관들이 첫 수색을 실시했고, 다음 해에는 또 다른 급습 후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 조사관 D. 에멜리아넨코가 신도에 대해 형사 사건을 접수했다. 곧 비로비잔 지방법원에서 스베틀라나 젬초바 판사가 주도하는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고르는 대가족에서 자랐고, 장남으로서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 익숙했지만, 조사가 시작되면서 그 일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저는 일을 많이 하지 않고, 모든 재정적 부담이 아내에게 짊어졌어요," 신자는 상황을 설명하며 덧붙였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활발한 삶이 느려지고 가족을 부양하기가 어려워졌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불운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어. 소란이 덜하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